다시 한 번 우리 같이
더 늦기 전에 미루지 말고.
여기에요, 여기.
트렁크를 열고 짐을 실어본다. 내 작은 캐리어 옆에 단단한 골프백 하나가 놓여진다. 트렁크 문을 닫고 뒷 좌석에 나란히 두 분을 태우고 문을 쾅 닫는다. 나도 얼른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메고 휴대폰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없다. 그냥 출발. 출발지는 부산. 그렇게 우리 나라의 동해바다 라인을 따라 그냥 달려올라간다. 달리다가 출출할 즈음 휴게소가 나오면 한 번 멈춰봐야지. 알감자도 먹고 땡초핫바도 먹고. 포항? 영덕? 그래 영덕이 좋겠다. 대게를 한 번 먹어야겠다. 그리고 근처에 숙소를 한 번 알아봐야지. 그냥 오늘 있는 방으로 주세요.
오늘의 여행 동반자는 우리 아빠랑 엄마다. 미안하지만 동생은 없다. 아빠랑 엄마랑 나랑 셋이 갈거다. 사실 완벽한 기억은 없다. 그래도 어렴풋한 기억은 있다. 어릴 적, 엄마랑 아빠가 그냥 가자고 했다. 차를 타라고. 그래서 탔다. 출발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어린이가 있는 차에 카시트가 필수이던 시절이 아니었다. 우리 집 차의 뒷 좌석에는 카시트가 아니고 평탄화 매트같은 발받침 매트가 깔려있었다. 동생과 나는 그 자리에서 그냥 잤다. 그리고 일어나보면 내가 살고 있던 부산이 아닌 다른 도시의 어느 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와 함께 그 도시에서 그리고 그 근교에서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 차를 타고 잠에 들었따 깨면 또 다른 어떤 도시의 한 숙박업소에서 눈을 떴다.
순간이동. 어린 나에게는 순간이동이지만 그 순간이동의 시간에 아빠와 엄마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귀여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며 달리셨겠지. 그 때는 정말 내가 느끼는 그 순간만이 전부였기에 그 찰나만을 기억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싶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 나에게는 행복이고 좋았던 순간이었기에 미소 지으며 기억할 수 있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찰나를 선물하고 싶고 그렇게 하고자 열심히 다녔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아이들과의 여행에 진심이고 또 나 역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어릴 적의 그 순간이 원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 번 가보고 싶다. 반대로.
운전은 제게 맡겨주세요. 그냥 가봐요. 가다가 배고프면 근처 도시 가서 그 동네 맛집에 가봐요. 가다가 잘 때가 되면 근처 도시에 가서 있는 방 하나 잡고 한 숨 자고 나와요. 자기 전에 간단히 한 잔도 좋겠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에 빵하나 사 들고 다시 차 타고 가요. 이번에도 운전은 제가 할 거에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세요. 내가 어릴 때 이런 여행은 왜 한거에요? 어떤 생각으로 한 거에요? 엄마랑 아빠도 재밌었어요? 제일 재밌었던 급 여행은 어떤 거였어요? 내가 그걸 기억은 할까요? 무엇이 드시고 싶으세요? 어디가 가보고 싶으세요? 어릴 때 나랑 동생 없이 가보고 싶었던 곳은 어디었어요?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가 되어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고, 아직 떠나보지 않은 여행을 상상해보니 하고 싶은 질문이 참 많네. 진짜 이런 여행을 떠나보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엄마아빠가 내 나이일 적,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릴 적 우리집 아이들 나이의 나와 동생을 데리고 간 여행에서의 엄마아빠의 대화거리는 무엇이었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나보다 어린 엄마와 아빠라니. 그 어린 엄마아빠의 그 시절 생각이 궁금해졌다. '여행'이라는 주제로 글감을 찾아 쓰는데 생각보다 나...앞으로 해봐야 할 일이 많은걸?
죽기 전에 해야 하는 버킷리스트라는 것. 목록을, 우선순위의 목록을 수정해야겠다. 북유럽 오로라 보기, 몽골의 쏟아지는 별보기 같은 거창한 것보다 소소하게 내 주변 사람과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게, 또 늦지 않게 해야 하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확 들어버렸다. 셋이서 하는 여행. 어렵지만 곧 해봐야하는 것. 미루면 안되는 것.

이번주 그림책.
로버트 버레이 글 / 웬델 마이너 그림 / 민유리 옮김
키위북스
* 오늘의 주제.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그 사람에게
'그냥쓰고싶어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름비 덕분에 (10) | 2024.07.22 |
|---|---|
| 돌코롬한 여행 (34) | 2024.07.20 |
| 내 작고 소중한 여행가방 (27) | 2024.07.17 |
| 기차의 여행 (7) | 2024.07.16 |
| 내일로 두 번째 이야기, 내일로 Adult (4) | 2024.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