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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이 끝나면

우리 집은 12월에 바닥 식사를 한다. 식탁이 다른 용도로 쓰기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집. 2021년부터 시작된 이 연중 행사는 작년까지 이어졌다. 12월이 머지 않았다. 작년에는 그 전들보다 머리쿵쿵이 심해져서 인지 흥미가 덜해진 듯 했지만 그래도 아늑한 그 식탁 아래의 분위기가 좋았다. 올해도 해야 하나 지금부터 식탁을 한 번 씩 노려보고 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작은 공간에 숨기를 좋아한다. 식탁 아래, 책상 아래, 이불 속, 옷장 등. 숨바꼭질의 본능이 있는 것일까? 이 크리스마스 집도 정말 무엇도 알지 못하면서 너무 신나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저것 자신들의 보물같은 물건들을 한 가득 끌어안고 와서는 식탁아래 크리스마스집 안 구역을 나누면서 여기는 내방 저기는 네방이라며 ..

감사한 나의 이웃 씨

워킹맘인 내가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각, 7시 40분.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아이는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등원이 가능한 시각이지만, 등교시간이 정해져있는 초등학생 아이는 한 시간 정도의 뜬 시간이 생겨버린다. 집에 혼자 둘 수도 도서실도 열지 않는 학교에 보내버릴 수도 없는 난감한 시간. 앞으로 닥쳐올 그 난감한 상황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찰나 친하게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가 선뜻 자신의 집을 내주었다. "우리 집으로 보내, 어짜피 우리 아들도 준비하고 가야 하는데, 오히려 친구 오면 빨리 준비하고 좋아." 이래도 되나 가능한 일인가 쭈뼛쭈뼛 했지만 대안은 없었고, 이제는 찐언니가 되어버린 그 집으로 아이를 보낸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런 동네이웃을 만났다는 게 너무..

너의 잔소리가 들려

"아니, 엄마! (한숨) 내가 아까 분명히 말.했.지! 이건 이렇게 놓고 이건 이렇게 하라고!""아니, 엄마! 오늘 숟가락이랑 젓가락은 이걸로 넣어달라고 어제 말했잖아!"  7살 딸이 내게 하는 잔소리. 이 글에 음성지원이 안된다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나에게만 들리는, 이 잘잘한 잔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 괄호 속의 한숨과 말.했.지! 의 온점으로 이것이 표현이 될까. 그 표정과 그 말투와 야무지게(?) 양 허리에 얹은 양손까지. 비단 우리집만 이런 귀...귀여운 둘째가 있는 것은 아닐테니 아마 각자의 집안에서 공감대를 얻어 피식 미소를 지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나의 거울이라고 했다. 내가 평소에 아이에게 하는 말투가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내가 혼내 듯 말이 길어..

나는 여행러이다

대학생이 된 나는 새로운 무언갈 알아가는 것에 매우 신이 나 있는 청춘이었다. 그 중 하나가 여행이었다. 지금은 국내의 여러 도시에의 매력을 알고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들에 목말라 있지만 그 당시 젊은 나의 눈은 해외로 향해 있었다. 혼자 떠나보고 싶어요! 라고 했지만 아직 매우 어렸던 나를 걱정한 부모님이셨지만 그래도 나 홀로 미국 여행을 어찌저찌 허락해주셨고 그 조건은 미국에 있는 친척집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결정된 나의 첫 나홀로 미국여행의 도시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촌언니가 사는) 시카고와 (역시나 한 번도 뵌 적 없는 오촌 고모가 계시는) LA 옆 오렌지카운티라는 도시였다. 아무렴 어떤가 일단 떠날 수 있음에 즐거웠고 신이 났고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

오,빠순이

"할머니, 엄마가 이거 갖다 드리래요." 이제 제법 숙녀 티가 나는 이린이가 내 옆에 와 쪼그리고 앉는다.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달콤한 케이크를 들고. 할머니가 감주와 한과만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되지. 할매입맛 이전에 나도 달달구리만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구.  "할머니 뭐 하고 있었어요?""그냥, 가만히 앉아있었어. 바람이 좋네. 여름 끝났나보다.""그럼, 다음주가 추석인걸.""엄마랑 아빠랑 뭐하니?""삼촌이랑 숙모랑 저녁에 뭐할지 얘기하던데요?""뭐한다니?""몰라요, 또 우리랑 할머니랑 놔두고 친구들 만나서 놀다 오겠지.""빨리 나가라 그래라. 우리도 좀 조용하게 쉬게.""그니까요, 얼른 나가야 우리도 좀 우리 할 거 하지.""뭐할건데?""알면서ㅋㅋㅋㅋㅋㅋ" 모든 소녀들은 다 거치는 과업같은 것..

It's for you. Happy birthday.

"엄마, 나 너무 신나. 두 밤만 자면 내 생일이야." 오늘 귀가한 아들이 신나서 말을 한다. 몇 주 전부터 아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막 시작이던 때부터 아들은 쉬지 않고 자신의 생일을 어필했다. "나는 가을이 제일 좋아요. 왜냐하면 내 생일이 있잖아요." "나는 방학이 끝나는 건 좋은데, 방학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요. 9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잖아." 그리고 드디어 이틀 뒤, 그의 생일이다. 작년에 했던 생일파티를 마지막으로 나는 친구초대 생일파티는 안해도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그는 여기 저기에 엄마인 나만 몰랐던 자신의 계획을 다 떠벌리고 다녔다. 키즈카페를 빌려(작년에 키즈파티룸을 대여했었지.) 친구를 초대할 것이라는 둥, 친구 누구와 누구와 누구는 꼭 왔으면 좋겠다는 ..

72시간의 선물

삐 ------------- 20OO년 O월 O일 O시 O분, 사망하셨습니다. 사망선고,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행위. 한 사람의 인생이 끝이 났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는 나의 옆으로 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인기척, 아니 그냥 기척이 느껴진다. 그 기척이 나에게 말을 한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당신은 지금 공식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당신은 이제 누군가의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기억으로서의 존재가 된 누구나 3일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태어난 날을 축하하며 받는 선물도 있는데 인생을 마무리한 지금, 잘 살아내었다고 축하하는 선물도 받아야지요. 사망선고를 받은 지금부터 72시간 동안 당신은 지난 당신의 인생에서..

욕쟁이 할머니의 산골마을

"뭐라카노? 마 일로 앉아 밥이나 쳐무그라." 제가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들은 말입니다. 이 곳은 경상도의 나도 모르는 산골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이 할머니(93)에게는 처음보는 어떤 누군가도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나 봅니다. 그저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떠나면 되는 곳인가봅니다. 가던 길을 잃어 우연히 들게 된 산골 마을의 이 할머니는 늘상 보던 사람을 만난 듯 자신의 평상을 내어주고 자신의 숟갈을 내어줍니다. 가려던 길을 잃어 들어온 자도 인생의 길을 잃어 들어온 자도 이 곳에서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나봅니다. 봄에 온 자에게는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국과 달래를 듬뿍 넣은 달래간장과 함께 고봉밥 산나물 상을, 여름에 온 자에게는 시원한 열무국수 한 그릇과 바삭한 두릅..

내 뒤의 든든한 백, 그와 그녀

아장아장, 한발 한발 발을 내딛어본다. 한발 한발 어색한 발걸음을 얼른 옮겨 포옥 안기고픈 그 품을 향해 손을 내밀고 간다. 휘청. 채 다섯걸음을 못가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순간. '어이쿠야' 하며 나의 겨드랑이 사이에 두 손을 넣어 내가 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을 막아준다. "우리 딸, 다섯 걸음이나 걸었네!" 나를 번쩍 들어안아 기특하다는 듯이 양 볼에 뽀뽀세례를 펼친다. 내가 넘어지지 않게 이렇게 나를 번쩍 들어올려줄 그녀가 있음을 알기에 두발로 걷는 것을 용기내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시작과 함께 나의 등을 보며 쫓아다니길 바쁠 그녀. 힘껏 페달을 밟아본다. "아빠, 잡고 있제? 계속 오고 있제? 손 놓은 거 아니제?" "아따, 가시나. 뭐가 그래 무섭노? 잡고 있다. 앞에 봐라. 앞에." ..

공언하기, 내뱉어버렸으니 해야지.

어느 덧 2024년의 절반이 흘러가고, 하반기 라고 부를 수 있는 9월이 되었다. 뜨거웠던, 무더웠던 여름의 열기는 계절의 마법인지 저만치 물러난 듯 하다. 아침 저녁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제 좀 그래도 낫네요.'라며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보니 바람이 상쾌하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기분도 아니었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년계획을 세우곤 한다. 9월이 되었다. 하반기 목표를 다시 한 번 세우는 시기이다.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그러고보니 나도 지난 주말 아이들에게 과제를 내 주었다. 2학기에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해내고 싶은 것 써보기. 그리고 오늘 공책검사를 했다. 스스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리스트도 많았고, 가족과의 추억을 쌓고 싶은 어린이도 많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마지막 6학년을 즐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