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쓰고싶어씁니다

나 슬퍼서 책을 샀어

늘해랑.지현 2024. 8. 4. 00:46

나 슬퍼서 책을 샀어

사실 그리고 빵도 샀어


 
 
 
빵과 관련된 나의 명언(?)이 하나 있다. 연애 초반의 일이었다. "나는 빵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빵보다 떡이 좋아." 약 10년이 지난 후, 이것은 나의 인생 최대의 말실수가 되었다. 하나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남편은 지금까지도 이 말을 가장 재밌어하며, 아마 죽을 때까지 놀려댈 것임을 난 확신한다. 난 정말 빵보다 떡이 좋았는데. 그 이후에 맛있는 빵이 너무 많이 생겨났다. 제빵사님들 너무 열일하신 거 아닙니까. (제병사(떡을 만드는 사람)님들의 마케팅과 레시피 개발을 열렬히 응원하는 바입니다.)
아무튼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빵지순례'라는 말이 왜 생겨났겠는가. 동네 빵집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을 떠난 여행지에서 핫한 빵집이 있으면 꼭 찾아가야 하는 빵지순례 순례자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역별 빵지순례 스팟은 검색창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으며, 이제는 너무 많아져서 여행 일정에 그곳을 다 방문하기에는 시간도 지갑도 허락하지 않는다.
 
제주에서도 마찬가지.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각종 디저트들과 더불어 제주에서도 반드시 가보아야 할 빵집 리스트는 어마무시하다. 숙소 근처 또는 이동동선에서 코스를 잘 짜야 갈 수 있다. 시간도 잘 맞아야 가능하다. 예전 제주 여행에서의 나도 그랬다. 여행 계획을 짤 때 동선에 맞는 베이커리 디저트가게를 꼭 하나씩 넣어두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마음을 내려두고 정말 여유로운 제주살이를 하려고 검색조차 하지 않았건만. 그냥 간단히 아침요기거리로 빵을 생각하고 근처 빵집을 검색했는데, '빵지순례'라는 단어와 함께 하는 빵집을 두 곳이나 발견해버렸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도 안가기는 불가능하다. 자꾸 머리 속을 맴도는 어쩔 수 없는 빵순이인 나는 아침 8시 오픈인 아주 감사한 첫번째 빵집에 신랑을 끌고 가버렸다. 늦잠을 이긴 오픈런. 네이버 영업시간은 영업중이었건만 휴가 기간인지 임.시.휴.무. 두번째 빵집도 근처였지만 그 곳은 10시 오픈. 허탕이다.  아직 나의 제주살이는 남았으므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살짝 아쉬운 귀가길, 네이버 지도를 망연자실 멍하니 보기 시작했다. 뭐 다른 거 없나 찾아보다 나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검색 창에 '서점'을 쳐보았다. 차량 10~15분 이내 방문 가능한 제주책방 2군데를 발견했다. 가보고 싶다. 빵집보다 더 가고 싶다.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구슬려서 방문하지?
이런 나에게 첫번째 기회가 왔다. 살 것이 있어 마트를 가야 했는데, 그 때 검색했던 첫 번째 책방이 마트 근처이다. "우리 나왔을 때 잠시 들러보자, 어때?" 성공이다. 그렇게 이 동네 첫번째 제주책방에 방문할 수 있었다. 역시나 좋았다.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작은 책방만의 매력. 책방지기님들의 취향에 맞게 큐레이션된 책장과 아기자기함들 그리고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취향의 굿즈들을 만끽하고 책방을 나섰다. 두번째 책방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두번째 기회는 어렵지 않게 찾아왔다. 제주살이 숙소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반드시 차량이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며 10시 오픈 두번째 빵집을 가기로 했다. 이 때다. 첫번째 빵집 2층에 두번째 책방이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빵집과 두번째 빵집은 1분거리) "나 거기도 다녀오면 안돼?" "어? 그래! 갔다가자." 그.런.데. 급하게 검색을 했던 것이 문제였던가. 아무리 봐도 2층은 책방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단 내려봐. 근처에 정차하고 있을게." 급하게 내려보았다. 차문을 닫다 차문에 왼쪽다리를 쓸리면서 쾅 부딪혔다. 눈물이 찔끔났지만 얼른 2층으로 올라가보았다. 책방이 아니었다. 8월 17일에 이사한다고 공지가 있었는데, 다시보니 2023년 8월이었다. 멍청이. 이사한 곳은 다시 차량으로 10분 거리였다. 차로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바지를 걷어올려보는데, 와 피가 철철. 
 

여보, 안되겠어. 나 슬퍼서 책방에 가야겠어. 책을 좀 사야겠어. 출발하자.

 
그렇게 나는 두번째 책방에 방문했다. 그리고 나에게 책을 선물했다. 기분이 풀렸다. 피가 철철 나는 다리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신난 책방순례자였다. 그리고 사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돌아오는 길에 두번째 빵집에 들러 에그타르트도 함께 구입했더랬다.(맛있었다) 내가 제주를 떠나는 날은 화요일, 첫번째 빵집의 휴무일은 일요일까지. 난 아마도 월요일에 첫번째 빵집도 방문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행복한 책빵순례자이다.
 
 
 

책방순례지와 (피나는 다리는 아랑곳않는) 신난 책빵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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