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카노? 마 일로 앉아 밥이나 쳐무그라."
제가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들은 말입니다. 이 곳은 경상도의 나도 모르는 산골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이 할머니(93)에게는 처음보는 어떤 누군가도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나 봅니다. 그저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떠나면 되는 곳인가봅니다. 가던 길을 잃어 우연히 들게 된 산골 마을의 이 할머니는 늘상 보던 사람을 만난 듯 자신의 평상을 내어주고 자신의 숟갈을 내어줍니다. 가려던 길을 잃어 들어온 자도 인생의 길을 잃어 들어온 자도 이 곳에서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나봅니다. 봄에 온 자에게는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국과 달래를 듬뿍 넣은 달래간장과 함께 고봉밥 산나물 상을, 여름에 온 자에게는 시원한 열무국수 한 그릇과 바삭한 두릅튀김을, 가을에 온 자에게는 여름 무로 달큰하게 끓인 든든한 경상도식 빠알간 소고기뭇국, 겨울에 온 자에게는 토종닭 백숙 한 솥 푸욱 삶아 튼실한 닭다리가 들어있는 한 뚝배기를 무심히 툭 던져줍니다.
"다 뭇나? 그라믄 이제 저짝 가서 좀 누버있으라. 뭐 심심하면 저 밑에 계곡 물에 발이나 한 번 담그고 가던가. 저 물 좋다드라. 저 물에 한 번 담그고 가면 기분이 좋타카데."
이 곳은 한끼 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 식당 옆 계곡에 앉아 계절을 즐기는 그런 계곡 옆 산장식당이 아닙니다. 마을입니다. 할머니의 말대로 계곡 물에 발을 살짝 담그고 앉아있으면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그들에게도 나는 그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는 사람입니다. 처음보는 사람인데 이 또한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모, 옥수수 드리까요? 방금 쪄 와서 억수로 맛있는데"
"옥수수랑 같이 막걸리 한 잔 하이소. 뭐 오늘 내려갈 거 아니지 않습니꺼?"
물론 오늘 내려갈 계획은 아니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덥썩 막걸리 한 잔을 받아들기에는 이곳은 제게 낯선 곳이었습니다. 어버버하는 사이 제 옆의 넙적한 바위 테이블 위에는 마르지 않는 막걸리 한 잔과 달짝지근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가 놓였습니다.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다시 찾고자 해도 찾을 수 없는 이 곳은 삶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만 나타는 곳입니다. 네 번의 계절을 이 곳에서 보내고 나면 나 역시 그 어떤 누군가도 그 어떤 상황들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저 맛있는 제철 밥상을 그저 허허실실 계곡의 소리를, 자연의 소리를 벗삼아 앉아있다보면 "뭐라카노, 다 그래 흘러가는기제." 라는 할머니의 말이 차분히 내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인제 니 가라. 내 밥상 그만 쳐무그라."
할머니는 이제 가라고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옵니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무심하게 식사가 끝날 때 쯤 숭늉을 툭 하고 던져주시던 할머니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올 것을 싶어 다시 왔던 길을 돌아올라가 봅니다. 하루는 하루쯤만 더 있다 가지 뭐.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할머니의 집이 보이질 않습니다. 내가 오래토록 앉아있던 계곡 의자와 넙적한 바위테이블은 보이는데 할머니의 집이 보이질 않습니다.
"가라캤더니 와 또 올라오고 지랄이고, 이제 니 줄 밥 없다카이."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 사이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 이번주 그림책
내가 일찍 일어났을 때
세스 피쉬맨 글 / 제식사 베글리 그림
보물창고
* 오늘의 주제
내가 건설하고 싶은 도시 상상하기
#나는도시보다산골마을로상상할래 #욕쟁이할머니늘해랑할머니 #일년만머무를수있어요 #또찾아오면숨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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