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맛보다
진정한 어른의 여름맛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그리고 이제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아직은 한낮의 무더위가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고 뜨겁게 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돌고 돌아야 하기에 멈추지 않고 째깍째깍 자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성인이 된 후, 땀도 많고 더위도 많이 타는 나에게 여름은 후순위 계절이었다. 선선한 봄 가을은 언제나 당연한 호好의 계절이었고,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라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없이 '겨울' 이라고 대답했으니, 나에게 여름은 상대적 불호不好 계절이 맞았다. 하지만 올 여름이 지나고 여름은 나에게 달라졌다. 여전히 땀은 쏟아지고 한낮의 기온에 숨이 턱턱 막히는 매일이었지만 '여름의 맛'을 살짝 본 기분이랄까?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들지만 일단 쓰고 보는 거다. 쓰다보면 정리가 되고 정리가 되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니까.
'여름의 맛'. 생각해보면 어린이 시절 나에게 여름은 불호계절이 아니었다. 여름방학, 아이스크림, 바다 또는 계곡에서 즐기는 물놀이, 빙수, 수박, 무더위도 상관없었던 바깥 놀이 등. 여름은 아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신나게 놀고 돌아와서 땀 범벅이 되어 발갛게 물든 얼굴로 선풍기 앞에 앉아 수박을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와그작 깨물어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계절. 땀이 대수였을까, 뜨거운 태양도 이길 수 있었더랬다. 어린이의 '여름맛'. 맴맴맴맴 매미소리와 함께 뛰어노는 신나는 여름맛. 똥꼬발랄한 싱그러운 에너지 가득한 생기발랄 초록초록 초여름의 여름맛.
그런데 성인이 되고 보니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면서까지 신나게 놀 마음도 그닥 들지 않았고, 땀이 범벅이 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은 신경쓰이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여름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버린거였다. 하지만 올 여름 내가 다시 맛보게 된 여름맛은 어린이의 '여름맛'과는 조금 다른 어른의 '여름맛'이다. 다시금 즐기게 된 방학에 시원한 에어컨 공기와 함께 하며 가지는 나만의 시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끼적이다 냉장고에서 꺼내오는 맥주 한캔으로 행복해 할 수 있는 계절.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한낮의 기온이 수그러들면 슬리퍼를 끌고 집앞 통닭집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그리고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얼음동동 빨갛고 새콤한 물회. 떠나고 싶을 때 짐을 싸서 훌쩍 갈 수 있는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여름 휴가. 맴맴맴맴 매미소리보다 위잉 울리는 에어컨 소리와 함께 했던 살짝은 잔잔한 여름맛. 어린이였을 적 느낀 시끌벅적 에너지라기보다 잎이 무성한 나무가 뿜어내는 초록 에너지가 단단하게 나를 채워주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여름. 그래, 발산하는 에너지가 아닌 채워주는 에너지. 여름에게 무언갈 받은 기분. 그래, 쓰고보니 난 올 여름, 여름의 그 맛을 본 것 같다.
여름에게 살짝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 너의 참맛을 알지 못하고 '상대적 불호 계절'이라고 했던 나를 용서해주렴. 그리고 이런 나에게도 채움의 에너지를 주어 나에게 알찬 열매를 맺게 해주어 고마워. 여전히 나는 땀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기에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숨이 턱턱 막히게 할 너를 두려워하겠지만 그래도 다음 여름을 다시 만날 나는 너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즐겁게 맞이할 것 같아. 아직 이번 여름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에 마지막까지 여름 너를 붙잡고 너의 초록의 기운을 아주 쪽쪽 받아 내 안의 열매를 어여쁘게 맺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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