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다, 여름열매
야무지게 익어가고 있는 나의 여름열매
오늘은 나의 휴가 마지막 날이다. 아무곳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리라 다짐하고 낮잠자고 책도 읽고 영화도 한 편 봤다. 오늘 낮에 덮은 책, 은유 작가님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제주 여행 초반에 제주 동쪽 책방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아주 오래오래 오랜기간 놓지를 못했다. 읽으면서 밑줄 긋고, 읽으면서 낙서하고, 읽으면서 대화하고 2주짜리 1대1 개인 수업을 듣는 것처럼 읽었다. 마지막 몇 카테고리를 남겨두고는 진득하게 읽고 싶어서 외출용 책으로 선택하지 않다보니 완독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던 아껴아껴 읽은 책이다.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 다시 처음부터 읽어봐야지. 책을 읽는다는 건 여러모로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하는 행위인 것 같다. 책을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에 따라 책은 나에게 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때는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고 어떤 때는 나를 질책하고 어떤 때는 아무런 의도 없이 나를 그냥 포근히 위로해준다. 나의 기분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2주 전의 나와 이 책을 덮은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다. 폭풍 성장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내가 이 책의 앞 부분을 읽는다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다시금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 머리 위로 보이는 인덱스 몇 장이 눈에 띈다. 그 때의 나는 왜 저기에 표식을 남겼을까? 다시 앞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남긴 밑줄과 낙서들은 어떤 내용들일까? 다시 할 작가님과의 대화와 더불어 과거의 나와 대화할 생각에 살짝 설레기도 한다.
뜨거웠던 여름. 뜨거운 여름 에너지를 듬뿍 받아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올 여름을 담은 나의 키워드를 고른다면 '제주도'와 '책'과 '글'. 늘 돌아가는 일상을 제외하고 말한다면 이 세 가지를 빼고는 올해의 나의 여름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제주도'에서 '책'을 읽고 거의 매일 '글'을 썼던 그 2주가 너무도 꿈만 같다. 한달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나는 20권의 책을 읽었고, 4권의 책을 왔다갔다 읽고 있으며, 7권의 구입한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무작정 매일 쓰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한달 전의 나에게 읽기 라는 새로운 행동이 더해지면서 나의 쓰기 일상에 하나의 영양분이 더해졌다. 막 발아한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이 필 수 있게 도와주었달까?
마침 내 옆에 쌓여있는 책들 중 한권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읽지 못한 오평선 작가님의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그래, 이번 여름 나는 아주 잘 익었다. 겨울의 추위를 견뎌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의 뙤약볕을 받아 무르익는 여름 열매들처럼 올 여름 내 안에서 견디고 있던 나도 몰랐던 작은 씨앗은 이렇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무탈하게 익어가고 있는 나의 여름열매. 아무쪼록 끝까지 야무지게 잘 영글어 한 입 달콤하게 베어먹을 수 있길.
내일부터 나는 다시 리얼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조금은 바뀐 내가 다시금 맞이할 일상은 또 어떤 다른 맛을 선사할지 궁금하다. 오늘 밤 나는 나의 여름을 돌아보며 어쩌면 일기같은 나의 글들과 내가 읽을 책 목록들과 일상 이벤트들을 기록한 나의 SNS 계정을 하나하나 읽어보다 잠이 들 예정이다. 오늘 밤, 굿나잇.
'그냥쓰고싶어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공언하기, 내뱉어버렸으니 해야지. (5) | 2024.09.04 |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17) | 2024.09.02 |
| 여름을 맛보다 (7) | 2024.08.19 |
| 읽고 쓰는 생활 (1) | 2024.08.15 |
| 꼬물이에게 축복을 (20) | 202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