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쓰고싶어씁니다

꼬물이에게 축복을

늘해랑.지현 2024. 8. 12. 22:33

꼬물이에게 축복을

세상에 태어난 꼬물이가 '자기'답게 살기를
그리고 엄마가 된 '너'도 '너'를 찾아 살기를


 
 

민들레는 민들레 민들레는 민들레
싹이 터도 민들레 잎이 나도 민들레
꽃줄기가 쏘옥 올라와도 민들레는 민들레
...
휘익 바람 불어 하늘 하늘 날아가도
민들레는 민들레 민들레는 민들레

 

그림책 '민들레는 민들레' 중에서
 
 

 
 
갑자기 오늘 아침 계획에 없던 친구집에 방문했다. 경기서북부에 사는 내가 경기남동부에 사는 친구네에 급 방문을 결정한 이유는 생후 5개월 차 꼬물이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아직까지 세상의 맛을 모유와 분유 밖에 모르는 꼬물이, 다음주면 쌀의 맛을 처음 보게 될 꼬물이. 뒤집기는 하지만 되집기는 아직 불가능한 꼬물이. 이모가 간다. 왕복 세시간의 물리적, 마음적 거리를 이겨내고 출발해본다.(이름과 태명은 따로 있지만 그냥 내가 붙인 닉네임, 이하 계속 꼬물이)
 
꼬물이 집에 도착해서 손을 씻고 집에서 챙겨간 보들보들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꼬물이에 대한 이모의 예의. 이모 좀 대단하지? 원래 이모는 외출할 때 화장이 기본 예의인데, 오늘은 선크림도 안 발랐어. 이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나만의 생색내기이다. 나를 본 꼬물이는 낯을 전혀 가리지않는 아이인 양 선한 미소를 날리고 나에게 폭 안겨있다. 경력직은 다르다며 신기해하는 친구 말을 들으니 괜히 뿌듯하고 그랬다.
다른 집 아이를 만났을 때 아무리 혼자 누워 잠 잘자고 꿀떡꿀떡 분유 원샷하는 아기를 보아도, 낯안가리는 방긋방긋 웃음쟁이 아기천사를 만나도, "얘 정도면 순하네." 라는 얘기는 절대 먼저 하지 않는다. 그 아이와 매일 함께 있는 아이의 보호자는 이 아이만 알고 이 아이와 24시간 있는데 아무리 순해도 보호자에게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먼저 아이에 대해 "우리 애 정도면 순한 편이지." 라고 이야기 해주면 "그런가 보네. 아주 효자(효녀)구만"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정도.
다행히 먼저 친구가 말해주었다. "우리 꼬물이는 잘자고 잘먹고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고. 그리고 "남편의 퇴근 후 육아도 도움이 아닌 함께"라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처음 생후 50일은 몸의 회복도 더디고 무기력증이 있었다 했지만 지금은 그것은 극복했고 세 가족의 일상을 잘 보내고 있었다. 여러 모로 다행이었다.
 
가물가물하다지만 그 시기의 일상을 그래도 먼저 두 번 겪어본 나도 그 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 통잠을 자지 않고 나의 잠시간을 방해하던 아이와의 밤전쟁을 마치고 쩔어 잠이 든 아침, 남편은 출근하고 개운하지 못하게 맞이하던 아침. 아이의 첫 낮잠을 기다리며 밥을 먹이고 요기를 하고 낮잠을 자고 뒷정리를 하고 아이 옆에 살포시 누워 나도 좀 쉬어볼까 하면 깨는 아이에게 또 밥을 먹이고 눈맞춤을 하고 돌아오지 않는 나만의 대화를 하고 또 낮잠을 재우고. 이런 루틴을 3~4번 반복하면 귀가하는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별 거 아닌 아이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런 하루의 루틴을 매일 반복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호르몬의 영향인지 모를 딱 그런 순간이 불쑥 찾아온다. '나는 없고 내가 그냥 애보는 기계가 된 것 같아.' 하며 내가 있는 이 공간이 갑자기 감옥같이 느껴지고 이 공간에 갇혀있는 듯 답답하고 울적해진다. 
이제 꼬물이같은 존재는 없는 나의 시공간에서 돌이켜보니 '그래, 그랬었어. 다 지나갔어. 그 때의 하루하루는 참 길었지만 꼬물이시기는 순식간에 지나갔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야, 너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하루하루는 참 길거야. 어느 날은 행복하고 어느 날은 참담할거야. 어느 날은 훌쩍 지나갈거고 어느 날은 지독하게도 느리게 흘러갈거야. 그런 날들이 모여모여 돌아본 그 날들은 어쩌면 순식간일거야. 아마도 그럴거야. 
 
꼬물이를 축복해주려고 들어왔는데, 그 당시의 내가 떠올라 친구를 응원해주는 글이 되었다. 아무려면 어떠냐. 축복이든 응원이든 나의 사랑을 담아 그대들에게 나의 진심어린 마음을 전하고 싶은거다. 세상에 막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울 꼬물이의 인생길에 '너의 모습을 너답게 피우라.'는 이모의 마음을 전한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하나 더한 나의 친구에게도 '너에게 무슨 역할이 더해지던 너는 너야, 네가 좋아하던 너의 모습을 지켜가며 가족과의 행복을 누리길 바랄게.'라는 마음을 함께 전한다.
 
 
 
 
덧.
어쩌다 남편이 잠깐 늦는다고 연락이 오면 그러려니 할 수 있대고 생각은 하고 마음도 먹는데, 막상 그렇게 연락받으면 그랬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그건 너도 백번 천번 만번 공감한다고. 그런데 그건 계속 그래. 난 지금도 그렇거든.
 
 
 
 

 
 
 
 * 오늘의 이야기 그림책
  민들레는 민들레
  김장성 글 / 오현경 그림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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