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나의 전쟁, 나의 병법
패전이 더 많은 나만 신경쓰는 나의 전쟁
해야 할 일이 쌓여있을 때
근데 그게 너어어어무 하기 싫을 때
그것은 바로 집.안.일.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림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먹는 건 또 진심이라 요리 설거지는 재밌게 잘 하는데,
또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입을 옷과 속옷과 양말에게 등떠밀려서 하게 되는데,
청소와 관련된 집안일은 그렇게 손이 가지 않는다
내가 매번 하는 말, 손님을 초대하며 까는 밑밥
우리집은 깨끗한데 더러워
뭐 없어보이는데 열어보면 카오스상태야
어느 물건이 어디 있는지는 나만 알아
얘가 이 찬장에 있을 물건이 아닌데 나는 알아
깨끗해보이지만 집에 갈 때 너의 양말이 더러워질지도 몰라
잘하고 싶어서 찾아는 보는데
아직은 영 관심도 가지 않고 실천도 안되고 뭐 그렇다.
그런데 또 집안은 어찌저찌 잘 돌아간다.
그것도 하나의 능력인가
(이것은 나만의 능력이 아니고 나와 남편의 능력치(?)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자,
우리 집의 꼴이 멀쩡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느냐!
숨겨보자 전법
너저분한 것은 일단 무조건 다 숨겨본다. 갑작스레 손님이 집에 오게 되었을 때, 널부러진 각종 물건들을 방 안으로 침대밑으로 서랍 속으로 이불 안으로 때려넣는 장면을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본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집 각종 쟁여템들은 여기저기 테트리스 하듯 참으로 잘 쑤셔넣어져있다. 물건의 위치도 정말 쌩뚱맞은 위치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 식탁 뒤 수납찬장 가슴높이 칸에는 아이와 함께 놀던 엄마표놀이 쟁여템 및 각종 그림도구들이 들어있고, 머리 위 높이 칸에는 각종 디저트메이킹도구들이 들어있고, 발밑 칸에는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다. 한 칸 옆 찬장으로 가면 약통과 과자통과 술과 청소템(보통 물티슈)이 있고 맨 아래칸에는 통조림 참치, 스팸 등을 쌓아두고 있다. 정말 기준 없는 혼란의 수납장이다.
하지만 문을 닫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숨기지 못하고 내가 왔다 갔다 하는 동선에 있는 지저분한 것들이 있다.
나는 이들을 어떻게 정리하는가?
전쟁의 상대는 정해졌다. 내.남.편.
남편을 이기기 위해 나는 다음의 전법을 구사하고자 한다.
첫째, 보여도 안보인다 전법(유사전법. 절대 내허리를 굽히지 않겠다 전법)
바닥의 머리카락, 아이들이 꼬물꼬물 공작활동을 하고 남겨진 종이쪼가리 쓰레기..사실 보이는데, 쉽게 허리가 굽혀지지 않는다. 그러면 그냥 지나간다. 이따가 허리 굽히고 싶으면 그 때 주워서 해결해야지. 남편히 하겠지. 나는 안보여, 안보여. 그런데 그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벽 경계 한 쪽으로 밀려 일주일째 제자리인 양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랬니? 너 거기 얼마나 있었더라? 몰라 안보여. 내 허리는 꼿꼿해. 난 개선장군이 될거야.
둘째, 미뤄보자 버텨보자 전법
매번 안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번씩 볼때마다 생각한다. 와 아직도 있네. 내가 안 치우면 정말 아무도 안 치우는 건가? 아니면 진짜 안보이는건가? 나는 안보이는 척 하는 거지만 정말 안보이는 거라고? 저게? 오기가 생긴다. 이제 나는 보이는데 안 치운다. 어디 한 번 끝까지 안보이나 보자.
그런데, 정말 안보이나보다.
셋째, 여보~ 이것좀 해줄래 전법
쪼가리를 지나쳐야 갈 수 있는 화장실에 가려는 남편이 보인다. "여보~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저 색종이 조각 좀 버려줄래?" 휴대폰을 손에 박제하고 화장실에 가던 남편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어? 어~" 이 전법은 통하는 때도 있지만 안 통하는 경우도 많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지.
넷째, 백기들고 항복이다.
그래 누가 하겠니, 내가 해야지. 일주일동안 거기 있느라 고생했어, 쪼가리야. 그냥 내가 좀 더 빨리 널 안아줄걸 그랬네. 머리카락아 그 사이에 친구들이 많이 생겼구나. 쓰레기통에 가는 길이 외롭진 않겠어. 내가 싹싹 모아 데려가줄게.
기가 차고 코가 막히고 뭐 그렇다
매번 네번째 상황까지 오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러하다
다른 집은 어떠하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시작부터 끝까지 나만 신경쓰는 전쟁
그러니 나만 쓰는 전법
승패도 나만 알고 있다. 승률은..... 말하지 않겠다.

덧붙임.
다음 전쟁은 "화장실 휴지심 버리기 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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